[김병윤의 축구생각] 11m의 미학, 승부차기 행운은 누구에게
입력 : 2018.02.20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축구의 승부차기(Penalty shoot-out)는 축구 경기에서 90분 동안의 정규 시간과 30분 동안의 연장전을 모두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승부를 가리지 못했을 때 승부를 결정짓기 위해 양 팀에서 각 각 5명의 선수가 나와 골라인으로 부터 11m 떨어진 페널티킥 마크에 볼을 놓고 킥을 실시하는 규칙을 말한다. 이런 승부차기의 역사는 1976년 유고슬라비아에서 개최된 제5회 유럽선수권대회(유로)부터다. 그 이전까지 경기에서는 승부가 결정되지 않았을 경우 동전 던지기로 결과를 결정하거나 재경기를 치렀는데, 이런 불합리성으로 1968년 이탈리아 제3회 유로 4강전을 계기로 승부차기 도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당시 개최국인 이탈리아와 소련(현 러시아)이 연장전까지 가는 120분 혈투를 벌이고도 승부를 가리지 못해 동전 던지기로 결승 진출 팀을 가렸고 결과적으로 이탈리아가 결승에 진출했다. 그런데 결승전에서 이탈리아는 또 다시 연장전 끝에 유고슬라비아와 비겼고 재경기를 치러 우승컵의 주인공이 됐다. 이에 준결승과 결승전 모두 같은 무승부였지만 동전 던지기와 재경기라는 두 가지 방식이 혼용되면서 보다 공정하게 승패를 결정짓자는 목소리가 거세게 일었다. 따라서 국제축구연맹(FIFA)은 이에 대한 방안으로 1978년 아르헨티나 FIFA월드컵에서 승부차기 규정을 공식 도입하여 1982년 멕시코 FIFA월드컵 때 처음으로 실시했다. 이 같은 승부차기는 1998년 프랑스 FIFA월드컵부터는 '골든 골(golden goal)' 방식이 실시되다가 2006년 독일 FIFA월드컵부터 다시 승부차기로 전환됐다.

승부차기는 11m의 미학으로 불리기도 하며 킥을 하는 선수나 골을 막는 골키퍼에게 엄청난 심리적 압박감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이를 '잔인한 러시안 룰렛'이라고도 부른다. 그런 만큼 승부차기에 관해서는 다양한 심리학적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다. 승부차기는 과학적으로 키커가 100% 이길 확률이 높은 게임이다. 이는 이론상 페널티킥에서 키커의 발을 떠난 볼이 골라인 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약 0.4~0.5초이며, 반면 골키퍼가 볼을 보고 몸을 반응하는 데는 약 0.6초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즉, 키커는 능동적인 반면 골키퍼는 수동적이다. 따라서 킥의 방향이 좋지 않은 한 물리적으로는 골키퍼가 방어 할 수 없다는 것이 정석이다.

승부차기는 수비수도 없는 노마크 상황에서 11m 거리의 골대를 지키는 건 골키퍼 혼자다. 이로 인하여 키커가 절대적으로 유리해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키커로 나서는 선수들에게는 팀의 운명을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감이 따른다. 막중한 책임감과 부담감을 이겨 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승부차기에선 생각보다 실축도 많이 나온다. 이러한 승부차기 경기규칙은 2017년 국제축구평의회(IFAB)가 승부차기의 공정성과 흥미 증진을 위해, 기존의 양 팀이 차례로 번갈아 차던 선축▶후축(ABAB) 방식이 선축 팀의 첫 키커가 승부차기에 성공할 때 심리적 압박감으로 인해, 후축 팀이 불리해진다는 가설로 폐지하고 선축▶후축▶후축▶선축(ABBA) 순서 방식을 도입하여 이를 시행하고 있다.

분명 승부차기는 절대적으로 골키퍼에게 불리한 게임이다. 그러나 키커의 압박감을 교묘히 이용하는 골키퍼의 전략과 판단이 맞아 떨어진다면 결코 골키퍼가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승부차기에 들어가면 골키퍼는 팔을 흔드는 등 다양한 몸동작으로 볼 방향을 유도하기도 하고 시간을 끌어 키커의 타이밍을 뺏기도 한다. 키커 역시 골키퍼와 시선도 마주치지 않으면서 집중력과 평정심을 찾으려 노력한다. 치열한 수 싸움의 성. 패는 마지막 0.01초에서 결정 난다. 결국 끝까지 상대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쪽이 이긴다. 이런 승부차기의 핵심은 키커의 순번이다. ABAB 방식에서는 1번과 5번 키커의 중요성이 커 경험이 많고 승부욕(담력)이 강한 대담한 선수를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ABBA 방식에서는 2번 키커의 중요성도 1번과 5번 키커 못지않게 중요시 되고 있다.

승부차기에서 이론상으로는 킥에 성공할 확률은 100%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다. 하지만 키커들은 승부차기를 하기 전 심리적 압박감이 극한에까지 이른다. 그 압박감을 이겨내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성공과 실패를 가른다. 킥 방향은 어느 곳으로 결정 할지 또한 어떤 킥 방법과 강. 약 선택은 어떻게 할지 등등을 놓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 여기서 심리가 복잡해지고 스트레스도 그만큼 가중된다. 이는 곧 승. 패의 마지막 갈림길로 작용하기 때문에 키커의 압박감과 실패했을 경우 후유증은 상상 이상이다. 반면에 골키퍼는 오히려 심리적으로 유리하다. 그 이유는 상대가 실축하든 자신이 킥을 막든 상대방보다 하나만 덜 실점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승부차기로 승자를 결정짓는 방법에 적용되는 규칙이 있다. 그것은 경기 종료시(연장전 포함)까지 경기에 임한 선수만이 승부차기를 행하도록 허용되며, 아울러 승부차기 자격을 가진 경기자는 킥을 행하는 도중에 어느 때고 자기 팀 골키퍼와 포지션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승부차기가 행해지는 동안 킥을 실시하는 경기자와 양 팀 골키퍼를 제외하고 모든 선수들은 센터서클 내에 위치해 있어야 하고, 또한 공격 측 골키퍼는 페널티 에어리어 밖의 경기장 안(페널티 에어리어 경계선과 만나는 골라인 위)에 위치해 있어야 한다.

승부차기 실시는 양 팀 선수 다섯 명이 ABBA방식으로 킥을 실시 다득점을 한 팀이 승자가 된다. 이 경우 어느 한 팀이 다섯 번의 킥을 다하기 전에 이미 승. 패가 확실해졌을 때에는, 나머지 킥을 실시하지 않으며 양 팀이 다섯 번의 킥을 실시하여 득점이 같거나 무득점일 때는, 킥을 실시하지 않은 다음 경기자 한명씩이 킥을 번갈아 실시 다득점 팀이 승리가 된다. 이때 대회규정에 허용된 최대수의 교체를 다하지 못한 팀은 킥을 행할 때, 부상으로 골키퍼의 임무를 계속할 수 없다면 교체 요선수와 교체를 시킬 수 있다.

승부차기는 '팀 스포츠인 축구의 정신에 맞지 않는다' '개인에게 지나치게 잔인한 방식이다' 등 여러 가지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 '잔인하지만 축구에서만 볼 수 있는 흥미진진한 마법이다'라는 옹호 의견도 만만치 않아 처음 도입된 이후 현재까지 계속 이어져오고 있다. 승부차기는 볼 하나로 팀의 운명이 바뀌는 단순한 경기규칙이지만 나름대로 원칙이 있다. 그것은 ▲다른 경기에서 좋았던 승부차기를 생각하고 징크스를 잊어라 ▲자신의 판단과 결정에 확신을 가져라 ▲상대 선수와의 심리전에 우위를 점해라 ▲평소 자신의 킥 방향을 바꾸지 마라 ▲골키퍼는 미리 움직이지 말고 볼의 방향을 정확히 보고 움직여라 ▲득점과 방어에 성공했을 때 강한 액션을 취하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처음 결정한 키커 순번을 바꾸지 마라 ▲경기에서 특별한 실수를 한 선수는 키커로 결정하는데 신중하라 ▲지도자는 키커와 골키퍼의 모든 판단과 결정을 믿어라 ▲승부차기는 도박과 같다 한 번쯤 성공 확률에 도박을 즐겨라 등이다.

모든 팀은 대회를 준비하며 훈련의 일환으로 승부차기 연습과 지도자는 상대 키커에 대한 분석 또한 매진한다. 하지만 실제 경기에서 이런 연습과 분석은 승리와 비례하지 않는다. 승부차기는 그 만큼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예측 불가능하여 선수와 더불어 지도자에게도 형언할 수 없는 압박감을 가져다 줘 두번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게임으로 받아들여 진다. "00야! 빨리 끝내고 가자" 승부차기에서 어느 지도자가 던진 이 한마디는 우군 선수에게는 여유를, 상대 선수에게는 불안감을 안겨줄 수 있는 말로 하나의 전략이기도 하여 이래저래 승부차기의 승자가 되기 위한 방법에는 정답이 없다. 그렇지만 잔인한 확률 싸움인 '러시안 룰렛'의 심리적 부담감 앞에선 아무 소용이 없을 때가 더 많다.

김병윤(전 전주공고 감독)
사진=스포탈코리아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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