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윤의 축구생각]골키퍼는 특별하며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입력 : 2017.10.17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축구에서 선수들은 스로인을 제외하고 손을 사용하지 못한다. 이런 축구에서 경기 중 유일하게 손을 사용하는 선수는 골키퍼다. 따라서 골키퍼는 특별하며 한편으로 보호받을 권리가 있는 선수로 인식되어 있다. 그렇지만 골키퍼가 애초부터 이렇게 특별하고 보호받을 권리가 있는 선수는 아니었다. 19세기 후반 럭비와 분리되며 현대 축구와 같은 축구가 태동되면서 축구는 9명이 공격에 나서고 2명이 수비를 맡는 형태였지만 그 때까지도 골키퍼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 당시의 축구는 ‘2-9’ 포메이션의 축구였다. 축구의 이런 초창기 시절 핸드볼은 반칙이 아니었다. 그래서 손을 이용하여 공을 건드리거나 옆구리에 끼거나 동료에게 던져줘도 무방했다.

그러다가 정확히 1871년에 드디어 골키퍼가 탄생했다. '선수 가운데 1명은 반드시 자기 진영 안에서 손으로 공을 잡을 수 있다'는 규칙이 제정된 것이다. 이렇게 되자 각 팀에서 손으로 잡거나 던지는데 유능한 선수가 아예 자기 진영에서 나오지 않고 그 자리를 전문적으로 지키는 전술적인 축구를 구사하게 되었다. 하지만 '선수 중에 1명이 자기 진영 안에서 손으로 잡을 수 있다’고만 규정했기 때문에 초기에는 일단 선수 중 아무나 손을 써서 공을 잡아도 괜찮았다. 그러나 일단 공을 손으로 잡은 선수가 패스한 것을 동료 선수가 손으로 다시 잡으면 반칙이었다. 당시 이러한 규칙이 만들어지던 무렵의 잉글랜드에서 조차 골키퍼는 종종 하프라인까지 진출하여 플레이를 펼쳤다.

이는 골키퍼라는 포지션의 특성과 개념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오늘날과 같이 축구입문 부터 완전히 전문적인 포지션으로, 육성되는 골키퍼도 아니었으며 유니폼도 특별히 구별되지 않고 1909년까지 필드 플레이어와 같았다. 아울러 골키퍼로서 확실한 영향력을 갖는 규칙이 미비했던 까닭에 ‘자기 진영’이라는 개념도 매우 자의적이었는데 대체로 하프라인 이하를 가리키는 수가 많았다. 이에 축구장의 절반 정도에서는 양 팀의 골키퍼가 손을 사용해도 무방했다. 이 때 이와 같은 규칙을 십분 활용한 골키퍼는 잉글랜드의 리 리치몬드 루즈였다. 리 리치몬드 루즈는 '선수 중에 1명이 자기 진영 안에서 손으로 공을 잡을 수 있다’라는 규칙을 이용하여 골키퍼로서 손으로 공을 잡고 하프라인까지 전진하는 특성을 보였다.

이는 전적으로 규칙이 미비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플레이였다. 마침내 1912년 잉글랜드축구협회가 골키퍼는 ‘페널티에어리어 안에서만 공을 잡을 수 있다’라는 규칙으로 개정했다. 이 같은 골키퍼 규칙의 개정은 곧 현대축구의 전문화된 골키퍼 탄생의 시발점으로, 오늘날과 같은 전문화된 골키퍼의 권한과 역할이 생겨나는 계기로 작용했으며 한편으로 축구사에 영원히 기록될 전문 골키퍼 스타플레이어도 탄생하게 되었다. 축구사 전체로서는 잉글랜드축구협회의 골키퍼에 대한 규칙 개정은 획기적인 조치였다. 결국 이 변화된 규칙에서 어떤 골키퍼가 살아남느냐 하는 것은 거대한 변화의 변곡점이었다. 그 변곡점은 바로 골키퍼에 대한 명확한 ‘백패스 금지 조치’ 규칙 제정이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백패스 금지 조치’ 규칙을 결정적으로 고려한 것은 1990년 이탈리아 FIFA월드컵이었다. 이 대회에 참가한 아일랜드 골키퍼 패키 보너는 동료 수비수들과 거듭 백패스를 반복했다. 당시만 해도 골키퍼의 백패스 규칙은 위반이 아니었다. 경기에 이기고 있을 때, 혹은 공격이 여의치 않을 때, 선수들은 골키퍼에게 발로 백패스를 했다. 골키퍼는 그 공을 잡고 여러 걸음을 걸어 다니다가 가까운 선수에게 스로우인 해주고, 공을 받은 선수는 다시 골키퍼에게 발로 패스를 했다. 이렇게 해서 시간을 끌거나 공격 빌드업을 하는 것이 허용되었는데, 패키 보너는 무려 6분 동안이나 이 행동을 반복했다. 그리하여 FIFA는 골키퍼 ‘백패스 금지 조치’의 규칙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골키퍼의 행동은 축구 팬들을 우롱하는 비신사적 행위이며 FIFA가 추구하는 이념에도 역행하는 플레이로 간주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축구가 다시 한번 진화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전.후반 90분 중에 아웃오브플레이 상황보다 인플레이 상황 시간이 과거보다 더욱 늘어났고 득점력도 증가했다. 경기의 속도 또한 훨씬 빨라졌다. 또한 발 기술이 뛰어난 골키퍼가 각광을 받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경기의 흐름을 정확히 읽으면서 긴 패스와 짧은 패스를 발로 재빠르게 처리해내는 능력은 뛰어난 골키퍼의 관건이 되었다. 반면 골키퍼는 스위퍼 역할까지 소화해야 했던 임무가 줄어들었다.

그래서 골키퍼는 가급적 페널티에어리어 내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이런 현실에서 유일하게 손을 사용하는 포지션이면서도 동료의 백패스를 발로 정확하고 예리하게 처리하는 기술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이중의 과제가 골키퍼에게 요구되게 되었다. 그 이전 스위퍼 역할까지 소화하거나 때로는 드리블을 해서 하프라인까지 올라가는 과감하고 모험적인 플레이는 거의 사라지게 됐다. 팀이 지고 있을 때, 후반 막판에 코너킥이나 프리킥 찬스가 났을 때, 비교적 장신이자 공중볼 처리 능력이 뛰어난 골키퍼가 어떻게 해서든지 한 골을 얻기 위해서, 상대 문전까지 올라가는 일을 제외하고는 오늘날 골키퍼는 페널티에어리어 내에서 활약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분명 1992년 골키퍼에 대한 ‘백패스 금지’ 조항의 새로운 규칙 적용은 경기 스타일에 변화를 가져다주며, 축구는 공격 지향적으로 변했고 수비진을 포함한 미드필드 라인의 섬세한 조직력과 볼 컨트롤 능력이 중요해졌다. 더불어 1992년 이후 모든 골키퍼가 침착해졌으며 독특한 세리머니를 과시하던 골키퍼는 하나둘 사라졌고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팀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골키퍼 포지션을 선택하기도 그리고 소화하기도 결코 쉽지 않다. 이유는 축구의 그 어떤 포지션보다도 갖추어야 할 조건도 많지만, 그 보다는 훈련과 경기에서 육체적인 고통과 페널티킥 및 승부차기 시 형언하기 힘든 부담감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이에 축구에 입문하는 선수들에게 골키퍼는 축구의 기피 포지션으로 인식되고 있다. 사실 골키퍼는 타고 나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뒤따르지만 그 보다는 후천적인 노력으로 골키퍼로서 갖춰야할 기술적인 면을 완벽히 갖추고, 경기 운영 능력과 골키퍼의 전략과 전술을 배우고 깨우친 상태에서 최대한 많은 경기 경험을 쌓으면 그 어느 포지션보다도 매력적인 포지션이다. 넓이 7.32m 높이 2.44m인 골문은 넓어 골키퍼 혼자 이를 모두 커버 할 수는 없다. 이에 팀의 수비 전술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 필수적인 조건은 수비수(기타 포지션 선수 포함)가 필요한 위치로 이동하여 골키퍼가 수비할 수 없는 영역을 커버해줄 수 있도록, 수비수와의 협조체제를 구축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소통은 필수적이다. 축구는 골키퍼 개인이 혼자 하는 스포츠가 아니다. 10명의 필드플레이어 선수와 함께하는 팀 스포츠여서 골키퍼는 절대 실점과 패배의 이유와 원인을 수비수들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되며, 팀 동료 선수들 역시도 골키퍼가 골문을 지키는 포지션이라는 이유로 실점과 패배의 멍에를 골키퍼에게만 씌워서는 안 된다. 결국 수비진과 골키퍼가 유기적인 조화를 이뤄야만 실점과 패배를 막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축구다.

김병윤(전 전주공고 감독)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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