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의 ‘샘플 사이즈’ 재고찰
입력 : 2018.09.13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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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탈코리아] 2000년 베이스볼 프로스펙터스(BP)의 라니 자자열리는 ‘세 가지 진정한 타격 결과(Three True Outcomes)’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는 투수와 타자가 싸워 야수들의 영향을 받지 않고 만들어낸 결과인 삼진, 볼넷, 홈런을 말한다. 다양한 변수에서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선수별로 변동의 여지가 적은 이 타격 결과들은 세이버메트릭스 연구에서 일종의 베이스캠프로 기능했다.

MLB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세 가지 진정한 타격 결과’에 대한 다양한 세이버메트릭스 이론들이 나왔다. 삼진과 볼넷이 다른 사건들에 비해 독보적으로 안정적이라는 가설도 그 중 하나다. 그러나 ‘남쪽의 귤이 북쪽에 가면 탱자가 된다’는 말처럼 KBO리그에는 이 가설이 적용되지 않았다. KBO리그에서는 세 타격 결과 중 삼진과 볼넷이 상대적으로 느리게 안정화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참조: KBO 리그와 샘플 사이즈, 그리고 스트라이크 존).

삼진과 볼넷은 홈 플레이트 주변에서만 벌어지는 사건이다. KBO리그에서 두 사건의 안정화가 느린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 타자가 타석에 어떻게 접근하는지 보여주는 두 가지 지표 스윙률(swing%)과 컨택률(contact%)을 근거 삼아 이에 대한 답을 내보고자 한다.


왜 스윙률과 컨택률인가?

우선 타자의 스윙률과 컨택률이 삼진 및 볼넷과 관계가 있는지, 있다면 어떤 관계를 갖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래는 각 변수 간의 상관관계를 계산한 표다. 계산은 2016년 중반부터 2년간 600개 이상의 공을 타석에서 본(약 150~200타석 이상을 소화한) KBO리그 타자 185명을 대상으로 했다.



[그래프1] 컨택률과 삼진의 상관관계




[그래프2] 스윙률과 볼넷의 상관관계


두 산점도에서 보듯 스윙률은 볼넷과, 컨택률은 삼진과 유의미한 음의 상관관계를 갖는다. 적극적으로 스윙하는 타자일수록 볼넷을 얻어내는 비율이 낮다(상관계수 -0.65). 배트를 공에 맞추는 능력이 뛰어날수록 삼진을 당하지 않는다(상관계수 -0.89).

스윙률과 컨택률은 KBO에서 삼진과 볼넷의 ‘이상 현상’을 푸는 데 핵심적인 단서다. 삼진 및 볼넷과 상관관계가 높은 것을 넘어 그 ‘원인’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의 야구 칼럼니스트 러셀 칼튼은 ‘52만 5,600분: 어떻게 하면 선수를 1년 안에 가늠할 수 있을까?(525,600 minutes: How do you measure a player in a year?)’라는 글에서 스윙률과 컨택률이 각각 50타석, 70타석 정도면 충분한 설명력을 얻는다고 주장했다. 이는 삼진이나 볼넷보다도 훨씬 안정적이다. 즉 삼진이나 볼넷은 ‘결과’에 해당하는 값이며, 이에 영향을 주는 스윙률과 컨택률이 타자의 ‘본질’에 가깝다고 해석할 수 있다.


스윙률과 컨택률의 ‘샘플 사이즈’

아래는 스윙률과 컨택률이 안정화되는 양상을 요약한 표다. 세로축인 공의 개수를 제외한 수치들은 랜덤 추출을 시행했다. 결정계수(R^2) 값이 0.5 이상인 부분은 초록색 표시를 했다.



[표1] 스윙률과 컨택률의 안정화 양상


놀랍게도 컨택률은 MLB의 결과와 일치한다. 컨택률이 안정화되는 지점인 280개의 공은 MLB에서 컨택률이 안정화되는 70타석과 대동소이하다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공을 맞추는 능력에는 선수의 고유한 운동신경 외 다른 간섭 요인이 적음을 알 수 있다.

보다 관심 있게 볼 것은 스윙률이다. MLB에서는 50타석 만에 안정화될 정도로 선수 본연의 모습에 가까운 수치지만 KBO리그에서는 사뭇 다르다. 안정성을 얻기 위해 최소 360구, MLB에서 필요한 타석의 2배인 약 100타석이나 필요하기 때문이다. 스윙률에 타자 본연의 모습뿐 아니라 리그에 따라 다른 간섭 요인이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상대하는 투수진의 문제

타자의 스윙 여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외부 요인으로 무엇이 있을까? 가장 의심해 볼 만한 요인으로 상대 투수가 있다. KBO리그 전체 볼넷 비율은 2017년 스트라이크 존이 확대되기 전까지 MLB보다 확연하게 높았다. KBO리그 투수들의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능력이 MLB 투수들에 비해 부족하기 때문이다. 타자가 제아무리 적극적인 스윙 성향을 가졌더라도 투수가 ‘도저히 스윙이 끌려 나올 수 없을 정도로 뻔한 볼’을 던졌다면 스윙하지 않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의 스윙률은 본인의 성향 또는 능력과 별개로 왜곡된다.

여전히 KBO리그의 샘플 사이즈에 대한 연구는 미진한 편이다. 연구가 진전된 훗날 이 글을 본다면 오류가 적지 않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MLB의 토양에서 만들어진 여러 세이버메트릭스 이론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점이다.


야구공작소
박광영 칼럼니스트 / 에디터=박효정


참조
Doctoring the Numbers: The Doctor is…Gone. By Rany Jazayerli August 15, 2000
525,600 minutes: How do you measure a player in a year? By Pizza Cutter November 14th,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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