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민의 축구話] 박주영에게 임대는 무의미하다
입력 : 2012.01.18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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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박지성'에 대한 기대감은 산산조각
[스포탈코리아] 꿈을 안고 아스널을 선택했다. 그리고 반년이 지나서 그 꿈이 깨지기 일보 직전이다. 선수 본인은 모르겠지만 그를 지켜보는 모든 이의 마음은 새까맣다. 지금 당장 임대라도 가야 한다면서 한국 축구의 대표 공격수가 처한 현재를 걱정하고 한탄한다.

아스널 입단 후 박주영의 공식 출전 기록은 칼링컵 3경기 1골, UEFA챔피언스리그 1경기다. 프리미어리그에서는 ‘제로’다. 단 1초도 그라운드를 밟아보지 못했다. 설상가상 상황은 악화일로다. 지난 연말부터는 18인 엔트리 포함도 감사할 정도가 되었다. 마루아네 샤마흐가 자리를 비우자 난데없이 티에리 앙리가 가세했다. 10대 유망주 알렉스 옥슬레이드-채임벌린에게도 밀린다. 16일 스완지 시티전 TV중계를 보던 팬들에겐 최악의 새벽이 되었다. 박주영 팬은 박주영이 못 나와서, 아스널 팬은 격하 상대에 패해서.

아스널에서 박주영의 입지는 2군, 소위 ‘리저브’다. 1군 선수들이 출전 불가능한 상황을 대비해 ‘비축된(Reserved)’ 선수다. 올 시즌 박주영이 기회 획득 방법은 두 가지 정도다. 1군 선수들이 단체로 식중독에 걸리거나 시즌 막판 팀이 UEFA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확보할 경우다. 정상적 상황에서는 경기 출전이 요원하다. ‘제2의 박지성’을 볼 것이라는 팬들의 기대감은 산산이 부서졌다. 동시에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지역예선 통과까지 악영향을 받을까 봐 걱정이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한 달에 한 경기 꼴이라면 정상 컨디션 유지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탈출구 전략 중 하나로 임대안이 제기된다. 때마침 1월 이적시장이라 이달 안에 뛸 수 있는 팀으로 임대 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임대론’ 자체가 박주영의 안타까운 상황을 잘 말해준다. 박주영에게 임대는 매우 굴욕적이면서도 유일한 옵션이기 때문이다. 먼저 굴욕적인 이유를 살펴보자. 자고로 임대는 구단이 장기적 관점에서 키우는 유망주의 육성책이다. 1군에서는 어차피 경기 출전 가능성이 없으니 타 팀에 교육을 위탁하는 셈이다.

현재 아스널에는 총 12명의 선수가 타 팀에서 임대 중이다. 모두 1990년 전후의 어린 선수들이다. 최연장자가 선덜랜드로 간 니클라스 벤트너(1988년생)다. 이들 대부분 시즌 종료 후 아스널로 돌아와 주전 경쟁을 꿈꾼다. 하지만 나이가 찬 박주영에겐 임대가 곧 결별을 뜻한다. 벤트너조차 “다시는 아스널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선덜랜드로 떠났다. 27세의 한국인 선수가 스스로 “임대를 원한다”고 말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굴욕이다. 지금 당장 출전을 원한다면 임대가 아니라 “팀을 떠나겠다”고 말해야 당당하다.

그런데 팀을 떠날 방법이 지금 임대밖에 없다. 박주영은 시한부 선수다. 시간도 야속하게 빨라서 이제 한 시즌 반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 선수를 이적료를 지불하면서 완전 영입해줄 구단은 거의 없다. 임대라는 계약 형태로 잠깐 빌려 쓸 수는 있겠지만 1년 반 뒤에 공짜로 보내줘야 할 선수를 누가 돈 주고 사겠는가? 특히 박주영이 있는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1월 이적시장의 거래 대상은 즉시 전력감이다. 계약과 동시에 곧바로 투입되어 결과를 만들 수 있다고 판단되는 선수라야 한다. 프리미어리그 출전도 없고 다섯 달 동안 4경기밖에 뛰지 못한 선수에게 그런 활약을 기대할 순 없다.

박주영을 원하는 마음이 가장 큰 곳은 아마도 프랑스 1부에서 10위권 밖에 있는 팀들일 것이다. 챔피언 클럽 릴OSC가 영입하려고 했을 정도로 프랑스 내 박주영에 대한 평가는 높다. 리그1 잔류를 위해서 지금 당장 써먹기에는 박주영만큼 좋은 카드가 없다. 그러나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박주영은 아스널 입단 과정에서 프랑스 축구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겼다. 프랑스 축구 팬들은 박주영이 어떤 과정을 거쳐 아스널로 가게 되었는지를 잘 알고 있다.

앞서 임대 주장이 박주영의 처지를 잘 말해준다고 했다. 사실 이게 핵심이다. 박주영 본인은 물론 그를 바라보는 언론과 팬들도 그가 아스널과 헤어지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이다. 박주영도 아스널에서 성공하길 원하고, 팬들도 그런 박주영을 보길 원한다. 아스널 선수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회인 줄 다들 잘 안다. 그만큼 팀을 떠나기도 쉽지 않다. 아스널을 떠나기 싫다는 두려움과 경기에 뛰고 싶다는 절실함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임대다. 다른 팀으로 임대 가 뛰어도 여전히 “박주영은 원래 아스널 선수”라고 말하고 싶은 게 그를 응원하는 팬들 마음이다.

병역 문제가 없다면 박주영의 마음도, 그를 바라보는 팬들의 마음도 한결 여유로워질지 모른다. 올 시즌 적응하고 인내해서 내년을 기약하자는 위안도 가능해진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박지성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인 선수 특유의 성실함을 코칭 스태프에게 어필하면 언젠가 기회가 주어질 거라고 말해주는 선배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박주영에겐 시간이 없다. 지금 잘해도 시간을 탓해야 할 판이다. 아르센 벵거 감독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박주영은 잘할 것”이라는 립서비스도 무안해진다. 그의 박주영 희망 고문이 한국 기업을 스폰서로 유치할 때까지 집요하게 계속될 지 몰라도 말이다.

박주영은 앞으로 남은 1년 반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투자 대비 효과를 따져봐야 한다. 아스널에서 도전(만족이라는 표현은 쓰지 말자)할지, 자신을 묶은 빅클럽이란 올가미를 풀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누군가 옆에서 조언해줄 순 있겠지만 전적으로 본인의 몫이다. 자기 자신을 위한 결정이기 때문이다.

사진=ⓒMarc Atkins/BPI/스포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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