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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빠른 이별' 한일 애도 물결…유상철을 '투지'로 기억한다
등록 : 2021.06.08

[스포탈코리아] 조용운 기자= 현장에서 만난 축구계 관계자들은 입모아 "유상철은 강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마지막 약속이 힘들 줄 알면서도 지킬 것으로 믿었다. 그런 유 감독이 결국 영면했다.


유 감독은 지난 7일 오후 서울 아산병원에서 췌장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50세.

유 감독은 인천 유나이티드를 지도하던 2019년 10월 췌장암 4기 진단을 받았다. 췌장암 말기 환자의 치료가 어려운 만큼 바로 지휘봉을 내려놓아야 했지만 강한 인내심을 발휘해 2019시즌을 모두 마무리했고 인천을 K리그1에 잔류시키겠다는 약속을 보란듯이 지켰다.

이후 치료에 전념하기 위해 현장을 떠났지만 유 감독은 늘 축구만 생각하며 "꼭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겠다"는 새로운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2년의 시간을 버텨오던 유 감독이지만 최근 병세가 악화된 끝에 마지막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안타깝지만 유 감독은 여전히 강한 사람으로 뇌리에 남아있다. 유 감독의 축구 인생은 포기를 모르는 힘으로 역경을 이겨내는 드라마였다. 왼쪽 눈 시력이 좋지 않은 핸디캡을 묵묵히 이겨냈고 팀이 필요할 때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을 소화하며 멀티플레이어의 면모를 과시했다.



한국 축구가 어려울 때 더욱 힘을 발휘했다. 건국대 재학시절인 1994년 3월 김호 감독의 발탁으로 태극마크를 처음 달았던 유 감독은 그해 10월 히로시마아시안게임 일본과 8강전에서 A매치 첫 골을 터뜨렸다. 숙명의 한일전에서 0-1로 끌려갈 때 신예의 발끝에서 터진 동점골로 한국은 3-2 승리의 명승부를 썼다.

한국이 세계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던 1998 프랑스월드컵에서도 벨기에전에서 투혼의 동점골을 넣었고 거스 히딩크 감독 재임 시절인 2001년 6월 컨페더레이션스컵 멕시코전에서는 코뼈가 주저앉는 부상에도 헤딩골을 넣는 힘을 발휘했다. 기어코 2002 한일월드컵 폴란드전에서 숙원인 월드컵 첫 승을 안긴 쐐기골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안겼다.



유 감독의 뚝심은 일본 축구팬들에게도 또렷하게 남아있다. 유 감독은 요코하마 F.마리노스와 가시와 레이솔에서 뛰며 J리그와 인연을 맺었다. 일본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던 유 감독의 투병 소식에 "할 수 있다 유상철 형!!"이라는 응원 걸개로 힘을 실은 바 있다.

일본 역시 유 감독의 별세 소식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여기에서도 투지를 살필 수 있다. 일본 '풋볼존웹'은 "유 감독은 J리그 역사에도 이름을 남겼다. 너무 빠른 이별이었지만 투지 넘치는 플레이는 수많은 일본 축구팬의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다"고 국적을 초월한 애정을 보여줬다.

사진=요코하마 F.마리노스, 스포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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