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도 9실점 1회전 탈락, 日 야구 저력 만든 '고시엔의 눈물'
입력 : 2023.03.24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타뉴스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일본 WBC 대표팀 선수들이 지난 22일(한국시간) 미국을 꺾고 우승을 확정한 뒤 기뻐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일본 WBC 대표팀 선수들이 지난 22일(한국시간) 미국을 꺾고 우승을 확정한 뒤 기뻐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정확히 150년 전인 1873년, 일본 야구는 태동했다. 미국인 교사 호레이스 윌슨(1843~1927)이 카이세이 학교에서 학생들과 야구를 시작한 게 그 기원이다.

이후 일본 야구는 고등학교를 중심으로 한 학원 스포츠로 꽃을 피웠다. 그 한가운데에는 고시엔 대회가 있었다. 이 대회는 지역예선을 거쳐야 하는 여름철 고시엔과 추계 대회 성적을 토대로 초청팀을 선발해 치르는 봄철 고시엔(센바츠)으로 나뉜다.

두 대회는 모두 '내일이 없는 승부'를 이어가야 하는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된다. 우승을 차지하는 단 한 팀만을 제외하면 모두 패자가 된다. 그래서 고시엔 대회 본선에서 패한 팀이 경기장의 흙을 조그마한 주머니에 담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미디어의 초점이 돼 왔다. 이 순간 패배한 팀 선수들은 눈물을 훔치며 '내년에는 더 좋은 결과를 내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이 행위는 고시엔 대회가 만든 하나의 의식이며 야구 소년들이 성인으로 성장하는 일종의 통과 의례다.

지난 22일(한국시간) 펼쳐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결승전에서 미국을 제압하고 우승을 차지한 일본 팀에는 고시엔의 눈물이 키워낸 선수들이 적지 않다.

우선 대회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된 오타니 쇼헤이(29·LA 에인절스)가 그렇다. 오타니는 고교 3년간 고시엔 대회 본선에 두 번 참가했다. 하지만 모두 1회전에서 패했다.

특히 오타니가 3학년이었던 2012년 봄철 고시엔 대회에서의 패배는 뼈아팠다. 고교 투수 랭킹 1, 2위를 다투던 후지나미 신타로(29·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맞대결에서 완패했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 동북지방 이와테현에 위치한 오타니의 모교 하나마키히가시 고교는 후지나미가 이끄는 오사카 토인고에 비해 전력이 떨어졌다. 하지만 오타니는 이 경기에서 8⅔이닝 동안 무려 9실점을 하며 쓰라린 패배의 경험을 맛봐야 했다(후지나미는 9이닝 2실점).

오나티 쇼헤이.  /AFPBBNews=뉴스1
오나티 쇼헤이. /AFPBBNews=뉴스1
일본 대표팀의 영건으로 가장 큰 주목을 받았던 강속구 투수 사사키 로키(22·지바 롯데 마린스)에게 고시엔은 또다른 의미의 눈물을 안겼다. 오타니와 같은 이와테현에서 출생한 사사키는 단 한 번도 고시엔 무대를 밟지 못했다. 지역예선에서 번번이 지역 라이벌 팀에 패했다. 사사키는 시속 160㎞ 이상의 공을 뿌려대는, 문자 그대로 초고교급 괴물투수였지만 전국 대회에서 자신의 기량을 뽐낼 기회는 없었던 셈이다.

멕시코와의 WBC 준결승에서 끝내기 2루타를 기록한 강타자 무라카미 무네타카(23·야쿠르트 스왈로스)도 고시엔과는 깊은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규슈가쿠인 고교 1학년 때인 2015년 여름철 고시엔에 출전한 게 유일했다. 그나마 첫 경기에서 4번 타자로 출전했지만 무안타에 그쳤고 팀은 패배했다.

오타니와 사사키, 무라카미에게 고시엔의 눈물은 어떤 의미였을까. 개인 기량 면에서는 이미 전국 최고 수준이었던 이들에게 고시엔의 실패는 더 큰 전진을 위한 계기가 됐다. 이들은 여러 차례 인터뷰를 통해 고시엔 대회에서의 패배를 통해 '야구에서 겸손함과 희생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는 말을 해왔다. 야구팀의 일원으로 앞으로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의미다.

어찌 보면 이들이 경험한 고시엔의 패배는 고교 시절 야구 스타 선수들이 갖기 쉬운 오만함과 안일함에서 탈피할 수 있는 보약이었을지도 모른다. 니혼햄 파이터스 시절 전날 선발투수로 등판했지만 다음날 오전 웨이트 트레이닝을 거르지 않았던 오타니의 성실한 태도도 고시엔 대회의 눈물에서부터 다져졌다.

일본 고교야구의 목표는 야구 기량 향상에만 초점이 모아지지 않는다. 야구를 통한 인격 함양과 공부하는 선수 배출도 중요한 목표다. 인격적으로 성숙한 야구 선수를 육성하고 야구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돼 있는 다양한 분야에 필요한 인재를 함께 키우겠다는 의미다. 공부하는 야구 지도자와 야구와는 무관한 분야에서 제 역할을 하는 고교 야구선수 출신이 일본에 많은 이유다.

구리야마 히데키 일본 대표팀 감독.  /AFPBBNews=뉴스1
구리야마 히데키 일본 대표팀 감독. /AFPBBNews=뉴스1
그런 점에서 2023년 일본을 WBC 우승으로 견인한 구리야마 히데키(62) 감독은 특별한 존재다. 구리야마 감독은 고교 시절 단 한 차례도 고시엔 본선 무대를 밟지 못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다른 꿈이 있었다. 교사가 되고자 하는 포부였다. 그는 교원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된 도쿄 가쿠에이(學藝)대학에 진학해 초·중·고 교사 자격증을 모두 취득했다. 그는 이처럼 야구뿐 아니라 공부도 잘하는 '문무양도(文武兩道)'의 전형이었다.

대학 시절에도 야구 선수로 활약했던 구리야마 감독은 드래프트 번외로 일본프로야구 야쿠르트 스왈로스에 가까스로 입단했다. 하지만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에게는 프로 무대에서 야구 선수로 뛰는 게 무리였다. 여기에 몸의 평형감각을 잃는 메니에르 병에 시달리면서 선수 생활을 접었다.

야구 선수로 활약하며 고교 시절부터 계속됐던 좌절의 시간은 그의 야구 철학을 만들어 줬다. '끊임없이 배우고 선수를 존중한다'는 게 그의 신조가 됐다. 야구해설가를 거쳐 하쿠오 대학의 경영학부 교수로 재직했던 그는 '공부하는 야구인'이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니혼햄 파이터스의 감독이 됐다. 그의 야구 감독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선수였던 오타니와의 만남도 이때 이뤄졌다. 투수와 타자를 겸하는 '이도류'를 꿈꿨던 제자의 목표에 힘을 실어줬던 사람도 구리야마 감독이었다.

'선수를 존중해야 한다'는 그의 야구 철학은 국가대표 야구팀 감독이 돼서도 지속됐다. 이번 WBC에서 극도로 부진했던 무라카미가 멕시코와 경기에서 결승타를 칠 수 있었던 배경도 여기에 있었다. 구리야마 감독은 무라카미가 스스로 슬럼프를 벗어날 수 있도록 말없이 기다려 줬다.

적지 않은 일본 사람들은 미래의 일본 야구를 짊어져야 할 고교야구 선수들이 고시엔 대회에서 흘린 눈물을 기억한다. 고시엔 대회의 모든 본선 경기와 지역예선의 주요 경기가 TV로 생중계되고 지역 언론에서는 예선 경기에 특별한 관심을 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일본인들은 이를 통해 선수들의 야구 실력뿐 아니라 휴먼 스토리에도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된다.

이처럼 일본 야구 선수들의 성장 드라마인 고시엔 대회는 일본 야구의 기술적 성장은 물론 야구 팬 확대에도 기여했다. WBC 우승을 차지한 일본 야구의 저력도 고시엔 대회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종성 교수.
이종성 교수.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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