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웅기의 슈퍼서브] '7266일째 A매치 무승' 기적을 꿈꿨던 산마리노의 눈물…그들이 좌절하지 않는 이유
입력 : 2024.03.27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배웅기 기자= 슈퍼서브(Super Sub)란 팀에서 '메인'은 아니지만 주어진 기회 속 강렬한 임팩트를 남기는 선수를 의미한다. 축구에서 포기할 수 없는 '낭만'과 '스토리', 두 요소가 확실하다. '배웅기의 슈퍼서브' 역시 메인은 아닐지언정 목표를 향해 묵묵히 달려가는 국가, 팀 그리고 선수들을 조명한다.

'단 1승', 산마리노 3만 인구의 간절한 염원이다.

그들에게 기적은 없었다. 산마리노 축구 국가대표팀은 21일(이하 한국시간) 산마리노 세라벨레 산마리노 스타디움에서 열린 세인트 키츠 네비스와 친선경기에서 1-3으로 패했다. 전반 21분 필리포 베라르디가 페널티킥으로 선제골을 기록했지만 타이콴 타이렐-안드레 벌리-해리 파나이오투에게 연속 실점을 내줬다.

여전히 FIFA 랭킹 210위로 최하위에 머물러 있는 산마리노지만 전력은 점차 강해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11월에는 덴마크와 핀란드에게 1-2로 아쉽게 패할 정도로 경쟁력을 갖췄다. 모두가 '이번이 기회'라고 생각했던 이유다.

베라르디가 선제골을 터뜨릴 때만 해도 산마리노 선수들은 환한 웃음을 지었다. '투잡 선수' 위주로 구성된 산마리노에게는 사실 한 골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이번 득점으로 4경기 연속골(덴마크-카자흐스탄-핀란드-세인트 키츠 네비스)이라는 대기록도 작성했다.

기쁨도 잠시, 전반 종료 직전 타렐과 벌리에게 각각 동점골과 역전골을 내줬다. 이후 후반 4분 파나이오투에게 KO 펀치를 맞았다. 실점 후 다시 한번 의지를 다진 산마리노는 경기 막판 세인트 키츠 네비스를 계속해서 압박했지만 결국 골문은 열리지 않았다. 무승 기록을 '7,266일'에서 끝내지 못한 선수들은 종료 휘슬이 올리자 모두 그라운드에 쓰러졌다.


산마리노의 마지막 승리는 무려 2004년 4월 29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친선경기에서 리히텐슈타인을 상대한 산마리노는 전반 5분 안디 셀바의 선제골을 잘 지켜내 역사상 첫 승을 따냈다. 이 승리는 현재까지도 처음이자 마지막 승리로 남아있다.

역대 A매치 전적 1승 8무 193패(32골 816실점)의 산마리노는 다행히도 4일 뒤 같은 경기장에서 세인트 키츠 네비스와 리벤지 매치를 치른다. 비록 한 번 패배했지만 상대를 잘 알게 된 만큼 무승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나 마찬가지다.

산마리노는 이탈리아에 둘러싸여 있는 면적 61㎢의 작은 국가다. 인구도 3만 3,000여 명밖에 되지 않는다. 유수 팀들이 경쟁하는 축구 리그도 있지만 프로 레벨은 아니다. 엘리트 축구를 배운 선수도 드물어 대표팀에도 투잡 선수가 대부분이다.

가장 유명한 선수로는 1980년대 유벤투스에서 미셸 플라티니의 파트너 역할을 톡톡히 해냈던 마시모 보니니가 대표적이다. 보니니는 유벤투스 시절 UEFA 챔피언스리그 전신인 1982/83시즌 유러피언컵에서 우승 주역으로 활약한 바 있다.

유벤투스 시절 시대를 풍미한 미드필더 마시모 보니니, 그는 이탈리아 대표팀의 러브콜을 거부했다. /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산마리노 대표팀 최다 출전(92경기) 선수이자 여전히 현역으로 뛰고 있는 마테오 비타이올리(34·SP 라 피오리타)는 낮에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퇴근 후 선수로서 훈련에 매진한다. 2007년 첫 발탁 후 단 한 경기도 이기지 못했지만 비타이올리는 지난 18일 영국 매체 'BBC 스포츠'를 통해 산마리노의 하늘색 유니폼을 입는 것만으로도 명예롭다고 밝혔다.

비타이올리는 인터뷰를 통해 "일상과 축구의 균형을 맞추는 건 복잡하지만 조국을 대표한다는 것은 그런 희생도 가치 있게 만든다"며 "두 자릿수 골을 먹고 패한 적이 있어도 우리의 자존감은 계속 올라간다. 동료 선수들과 함께 20년의 기다림을 끝내는 게 궁극적 꿈"이라는 포부를 전했다.

20년이라는 길고 긴 시간의 기다림에도 그들이 결코 좌절하지 않는 이유였다.

크리스티안 마지오(좌)를 막아내는 마테오 비타이올리(우) /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산마리노 역사상 첫 승리를 견인한 안디 셀바(우) /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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