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호의 키워드] “불가사의한 이동국, 정말 잘하는 박주영”
입력 : 2015.08.28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이동국은 불가사의한 선수”
”PSG 입단하려고 파리까지 갔는데..”
”박주영은 많은 의지가 되는 친구”

[스포탈코리아=완주] 김성진 기자= ‘태양의 아들’ 이근호(30)는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공격수 중 한 명이다. 각급 대표팀을 두루 거친 그는 항상 빠르고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지난해 열린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중거리슛으로 러시아의 골문을 여는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그 외에도 각급 대표팀과 프로 경기에서 이근호는 승부를 결정하는 골과 플레이를 수없이 많이 보여주었다.

또한 항상 미소를 잃지 않은 플레이, 재치와 유머가 넘치는 말과 행동은 이근호의 매력을 한층 돋보이게 하는 부가적인 요소다.

이근호는 지난 7월말 전북 현대에 계약 기간 6개월에 임대 이적을 했다. 그는 전북의 목표인 K리그 클래식과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일조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자신에게는 아직 입을 맞추지 못한 K리그 클래식 우승을 바라고 있다.

두 가지 큰 목표를 위해 서서히 몸을 끌어올리고 있는 이근호를 완주군 봉동읍에 위치한 전북 클럽하우스에서 만났다. 그와 관련한 다양한 키워드를 질문으로 던져 이근호가 지금까지 걸어온 축구 인생을 다시 한 번 짚어봤다.

아시아 MVP
이근호는 2012년 울산 현대 소속으로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AFC 챔피언스리그에서의 빼어난 활약으로 결승전 MVP 및 2012년 올해의 선수를 수상했다.
“AFC 챔피언스리그는 프로에 온 뒤 처음으로 한 우승이었어요. 게다가 MVP까지 받았습니다. 당시 축구하면서 가장 기뻤고, 좋았던 한 해로 기억에 남습니다. 제게 남다른 의미가 있는 상이었습니다.”



K리그 클래식 우승
이근호는 아직 K리그 정상에 오른 적이 없다. 해외 생활을 하면서도 리그 정상은 밟지 못했다. 그렇기에 전북 현대 이적은 그의 첫 리그 우승 가능성을 열어준 기회였다.
“그 동안 2~3등만 계속했어요. 리그 우승은 정말 하고 싶어요. 리그 우승을 한 번도 못하고 은퇴하는 선수들도 많습니다. 그만큼 쉽지가 않죠. 전북은 리그 우승권에 있는 팀이고 운 좋게 전북에 왔습니다. 밥상 위에 숟가락 하나 얻듯이 제가 할 역할을 잘해서 우승하고 싶습니다.”

11 + 33
이근호를 상징하는 등번호는 11번이 유명하다. 가깝게는 지난해 브라질 월드컵 때 11번을 달고 나섰다. 그 외에도 대표팀과 여러 프로팀에서 11번을 달았다. 하지만 전북 현대에서는 시즌 중 입단을 했기에 남는 번호 중 하나인 33번을 선택했다.
“처음부터 이 번호가 좋다, 저 번호가 좋다 그런 것은 없었어요. 대표팀에서 11번을 단 뒤 애착이 생긴 것이죠. 또 다른 번호보다 11번을 달았을 때 플레이가 좋았고요. 11번에 큰 의미는 없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번호를 계속 달게 되고 애착이 가게 됐습니다. 전북에서는 33번을 달았는데 전 같은 숫자가 2개 들어간 것을 좋아해요. 11, 22, 33처럼요. 그래서 33번을 달았습니다. 주빌로 이와타에서 뛸 때 33번을 달았던 적도 있고요.”

저니맨
프로스포츠에서 팀을 자주 옮기는 선수를 저니맨(journey man)이라고 한다. 이근호도 2005년 인천 유나이티드를 시작으로 대구FC, 주빌로 이와타, 감바 오사카, 울산 현대, 상주 상무, 엘 자이시를 거쳐 전북 현대에 왔다. 10년간 총 8팀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하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팀을 옮기는 것도 나름 재미있고 목표 의식도 생기게 됩니다. 새로운 팀에 갈 때마다 경쟁을 해야 하니까요. 지금까지 뛴 팀 중에서는 엘 자이시 빼고는 다 괜찮았어요. 나머지는 다 애착이 가죠. 많은 기억도 남고요.”

최강희
2005년 7월부터 전북 현대를 이끌고 있는 K리그 최고의 명장. 10년간 전북을 지휘하며 3번의 K리그 우승, 1번의 AFC 챔피언스리그, FA컵 우승이 있다. 2012년부터 1년 6개월간은 A대표팀으 지휘했고 이 기간에 이근호를 지도하기도 했다. 사실 최강희 감독은 그 전부터 항상 이근호를 영입하고 싶어했고 바람을 이번 여름 이루었다. 동명이인으로 인기 여배우 최강희도 있다.
“감독님을 대표팀에서 처음 뵈었지만 그 전부터 전화통화를 했었어요. 인천에서 대구로 이적할 때 통화 한 번 했지만 이적이 되지 않았죠. 일본에서도 이와타에서 감바로 옮길 때 전북에 오길 바라셨지만 안 됐죠. 그러다 대표팀에서 만났고, 이번에 처음 같이 하게 됐습니다. 같이 한 시간은 길지 않지만 감사합니다. 감독님께서 편하게 잘 해주십니다. 지금 제 몸상태가 오래 쉬었기에 정상이 아니에요. 중동 스케줄로는 지금이 동계훈련 기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감독님께서는 그런 것을 배려해주시고 부담 없이 경기를 하게 해주십니다. 어떻게 보면 뛸 수 없는 몸상태인데도 믿어주시죠. 그래서 (이)동국 형이 오래하고 있나 봐요. (웃음)”



이동국
대한민국 최고의 공격수. 현재 K리그의 모든 공격 기록을 자신의 발로 스스로 갱신하고 있다. 이근호는 전북 현대에서 이동국과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다.
“프로에서는 처음 같이 뛰지만 제가 2007년에 처음 대표팀 할 때 동국 형도 있었죠. 서로 알고 지낸 지는 오래됐어요. 동국 형은 불가사의한 선수에요. (만 36세인) 저 나이에 저렇게 뛰니까요. 집에 뭐가 있는 건지 체력이며 회복 능력이며 모든 게 대단해요. 지금 운동하는 것을 봐도 제일 잘해요. 자신에 대한 관리도 잘하고요. 40세까지도 하실 것 같아요. (웃음)”

월드컵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세계 최고의 축구 축제. 이근호는 지난해 열린 브라질 월드컵에 출전했고 러시아와의 1차전에서 선제골을 넣는 등 맹활약했다.
“지금 지나고 생각하면 정말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해보고 싶고, 지금까지 뛴 것과는 다른 대회였어요. 분위기 자체가 달랐죠. 그래서 월드컵을 갈망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고르 아킨예프
러시아 최고의 골키퍼. 브라질 월드컵 때 이근호의 슈팅을 잡다 놓치면서 골을 허용했다. 이 장면을 두고 국내에서는 ‘기름손’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미소를 지으며) 친근감 있는 고마운 친구죠. 왜 잘하는 선수가 그렇게 했는지.. (웃음) 경기 끝나고 들어갈 때 따로 얘기한 것은 없었고요. 지금 생각하면 감사할 뿐입니다.”



허정무
한국축구의 레전드. 2010년 남아공 월드컵 16강을 이끈 명장. 현재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로 재임 중이다. 허정무 감독은 남아공 월드컵 최종명단을 발표할 때 이근호를 제외했다. 이근호의 제외는 예상하지 못한 결정이었다.
“주위에서는 제가 상처 받았다고 하는데 제가 못해서 월드컵을 못나간 겁니다. 허정무 감독님을 탓하면 안되죠. 오히려 감독님 덕에 대표팀에서 뛰었고 중용됐죠. 감독님께서 뽑아주셨기에 월드컵 예선에서 뛸 수 있었고 대표팀에서 자리잡게 됐으니까요. 그리고 그 당시에는 유럽 진출 실패가 있으면서 몸이 안 좋았어요.”

파리 생제르맹(PSG)
프랑스 리그1의 명문팀이자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 구단. 5번의 리그 우승 등을 자랑한다. 이근호는 2009년 이적을 추진했으나 실패한 아픔이 있다.
“(2009년) 대구에서 이와타로 가기 전 유럽에서 제의가 많이 왔었습니다. 네덜란드 빌렘II와 계약을 하기 직전에 프랑스 에이전트가 PSG에서 제의가 왔으니 가자고 했어요. 빌렘II에서 욕 많이 먹었죠. (웃음) 빌렘II가 호텔, 경기 티켓, 훈련 등 모든 것을 제공해줬거든요. 파리로 간 뒤 PSG에서 훈련을 하고 UEFA컵 경기를 할 때라 VIP석에서 경기를 보게 해줬습니다. PSG 선수들도 소개해줬고요. 그래서 계약을 하려고 했는데 비유럽 선수는 지금 등록이 안 된다고 해서 못하고 6개월 뒤 여름 이적시장에 다시 추진하자고 해서 이와타와 계약했습니다. 이와타와 계약할 때 연봉 협상을 안 했어요. 연봉을 적게 받는 대신 유럽에서 제의가 오면 자유계약으로 풀어주는 조건을 걸었거든요. 그래서 이와타를 갔고 여름에 PSG에서 공문이 왔습니다. PSG 이적을 위해 이와타에서 작별 인사를 했고, 가려고 하는데 연락이 없어서 알아보니 감독이 바뀐 거에요. 새로 온 감독이 자신이 원하는 선수를 데려오고 나가려던 선수들이 다시 하겠다고 버티면서 이적이 지연됐죠. PSG는 영입 할 테니 걱정하지 마라고 했는데, 딱 보니 영입은 하겠지만 우선 순위가 아니더라고요. 허정무 대표팀 감독님께서 창피하더라도 이와타라고 다시 돌아가 운동을 하라고 하셨고, 저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 결국 이와타로 돌아가 계약서를 새로 쓰고 운동을 했었습니다.”

군대
이근호는 2013~2014년에 상주 상무에서 군복무를 한 예비역 병장이다.
“군생활이 재미있었어요. 학창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죠. 또래와 군생활을 하는데 예전 고등학교 시절에 합숙을 하는 그런 느낌이었거든요. 통제된 생활을 하니 밖에서 밥 한 번 같이 먹는 것도 즐거워했었습니다. 프로 생활을 하면서 쉬어간 시기였고 추억도 쌓았던 시기였습니다. 그 때 멤버들과는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트랙터
농업이나 건설 목적으로 쓰이는 특수 차량. 이근호는 지난해 K리그 올스타전 때 트랙터를 타고 올스타전에 참가하는 영상을 찍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재미있었습니다. 기획도 좋았고 뭔가 이미지도 맞았고요. 서로 즐기면서 찍었어요. 그래서 영상이 잘 나온 것 같아요.”

이정협
A대표팀의 최전방을 이끌고 있는 공격수. 지난해까지는 무명이었지만 A대표팀에 깜짝 발탁된 이후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근호는 지난해 이정협과 군생활을 같이 한 선후임 관계다.
“정협이는 앞으로 대표팀을 이끌 차세대 공격수 입니다. 상주에서 처음 봤을 때보다 너무 많이 발전했어요. 가진 게 많은 선수인데 자신을 가로막던 것을 깨고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긴박한 상황에서 강하게 요구하면 위축되는 그런 경향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을 벗어났고, 플레이에 자신감도 생긴 것 같아요. 아직 어리니 더 좋아질 것이고 대표팀에서도 믿고 뛰게 해주면 잘할 것입니다.”

박주영
한국축구 스트라이커 계보를 잇는 공격수. 각급 대표팀에서 항상 최전방 공격수로 맹활약했다. 이근호는 박주영과 각급 대표팀에서 공격 파트너로 함께 뛰었다. 박주영의 존재가 워낙 커 이근호는 항상 박주영 뒤에 있는 위치였다.
“주영이는 어렸을 때부터 워낙 잘한 선수에요. 팀 플레이 할 때 주영이에게 많이 도움을 받았고 대표팀에서도 의지했던 것 같아요. 사실 2인자의 시선은 못 느꼈고, 제 스타일이 2인자에에요. 1인자가 될 수 없는 것을 알고 신경 쓰지도 않습니다. 주영이는 잘 하고 인정을 하니까요. 또 서로 스타일이 다르기에 그런 의식은 전혀 없습니다.”

롯데월드콘
유명 아이스크림 콘. 이근호는 축구선수로는 이례적으로 2011년 광고모델로 나섰다.
“6개월 단발 계약이었어요. 광고 제의 들어온 것은 진짜 많았죠. 그래서 한번은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죠. 한국에 있을 때는 스케줄이랑 안 맞아서 못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CF는 일본에 있을 때였고 한번도 경험을 못해봤으니 해보자고 결정했죠. 팀에서도 이런 경험이 없었는데 제가 얘기하니 좋다고 해서 재미있게 찍은 기억이 납니다.”



사진=스포탈코리아, 대한축구협회, 한국프로축구연맹, 게티이미지코리아,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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