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의택의 대담] 우리가 잘 몰랐던 '장결희' 이야기
입력 : 2016.04.17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바르셀로나(스페인)] 홍의택 기자= 소속팀 경기를 뛰지 못 한 게 근 1년 반이다. 대표팀 일원으로 국제 대회에라도 출전하는 게 아니라면 국제축구연맹(FIFA)의 징계(2016년 4월까지 출전 불가) 소식 정도가 전부였다. 본인 스스로 종적을 감춰온 터라 근황 접하기란 더욱 어려웠다.

"그동안 인터뷰 제안을 많이 거절했어요.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부담스러웠거든요. 1군에 올라간 것도 아닌데, 관심을 과하게 받는 건 아닌가 싶었어요. 2018 월드컵요? 그게 바로 다음 월드컵인데요? 기성용, 손흥민 선수가 20대 초반에 월드컵 대표가 되긴 했어도 저는 묵묵히 더 해야 해요."

조금은 왜소한 몸에 양 볼 듬성듬성한 여드름 자국. 통 좁은 청바지를 한 단 접어 올리고선 머리를 부산스레 띄운 앳된 청년이 수줍게 인사를 건네왔다. "친해지면 괜찮은데, 처음엔 워낙 낯을 가려서요"라며 어색해 하던 장결희(16·바르셀로나 후베닐B)는 이내 조곤조곤한 말투로 진중함과 익살스러움을 넘나들었다.



▲ 최강희 감독을 만났다는 이야기가 국내에 전해졌다.

"까딸루냐 쪽 교회 가는 길에 갑자기 지나가시는 거예요. 어디서 많이 봤던 분이다 싶었는데 맞더라고요. 먼저 '사진 좀 찍을 수 있을까요'라고 여쭤봤죠. 감독님께서 '여기서 축구 하는 애냐'라고 하시더라고요. '바르셀로나에서 뛰고 있어요'라고 했더니 '아, 그렇구나' 하셨어요."

▲ 스페인에서 축구계 인사를 우연히 만나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저도 그냥 '안녕히 가세요'라고 했죠(웃음). 제대로 인사드렸다면 더 반갑게 대해주시고, 밥도 얻어먹을 수 있었을 텐데, 지나고 나니 아쉽더라고요. 거기에도 한국 음식 먹으러 간 거였거든요. 우연한 만남이 신기해 SNS에도 올렸는데, 기사로까지 나갈 줄은 몰랐어요."

▲ 그래서 그 날엔 무슨 음식을 먹고 왔나.

"제육볶음, 부대찌개랑 떡볶이요. 매운 게 생각나서 자주 찾아가요. 한식 종류가 많지는 않아도요. 밥이요, 완전 할머니가 해주시는 밥 같아요. 주말마다 돈 뽑아서 가요. 돈 내지 말라고 하실 때도 있는데, 이게 참 죄송해서···. 한국 분들 뵈러 가니까 반갑죠."

▲ <꽃보다 할배> 방영 이후 바르셀로나 관광객이 확연히 늘지 않았는지.

"한국 사람은 시내에 나가야 보는 정도에요. 이 동네(장결희가 거주하는 기숙사 라 마시아는 시내에서 10km 이상 떨어져 있다)에까지 찾아오시는 분은 안 계시니까요. 그렇다 보니 평소 한국말 할 기회도 없고요. 중학교 친구가 이쪽으로 축구 유학을 와 주말마다 만나는 게 낙이에요."



▲ 4년 전 바르셀로나에 처음 정착했을 때로 돌아가 보자.

"바르샐로나 애들이 얼마나 잘하는지 궁금하더라고요. 제가 여기 올 실력이 되나 싶기도 했고요. 많이 무서웠죠. 동양인에 대한 무시가 있어 더했어요. 제가 팀에서 분위기를 주도하는 타입도 아니고, 그냥 조용히 지냈어요."

▲ 어린 나이에 멀리 떠나와 심적으로 더 힘들지 않았을까.

"중학생 1학년 9월쯤에 처음 왔어요. 1~2년 정도는 눈치 보면서 말 배우느라 정신없었어요. 어렸을 때 오다 보니 엄마, 아빠는 늘 보고 싶었고요. 카카오톡도 하고, 네이트온이나 스카이프도 매일매일 하면서 연락했죠. 이제는 제가 먼저 하는 경우는 없지만요."

▲ 축구에, 공부에 외로울 새가 있었나 싶기도 하다. 오늘도 아침 일찍부터 수업 듣고 왔다.

"처음 올 때는 축구만 배우는 줄 알았는데, 막상 오니까 학교도 보내고 공부를 많이 시키더라고요. 어쩌면 축구 하는 시간보다 공부하는 시간이 더 많을 걸요? 축구 하러 왔는데 왜 이러지 싶기도 했어요. 사실 책 읽는 걸 좋아하지는 않아요. 공부가 잘 안 맞는 것 같아요(웃음)."

▲ '바르셀로나 유스팀 선수'가 아닌, '10대 후반' 장결희의 일상은 어떤가.

"운동 끝나면 휴대폰 들고 있는 시간이 많아요. 요즘은 아시안컵 관련해 기사들 쭉 살펴보죠. 무실점으로 계속 올라온 것도 대단한데, 결승전 상대가 개최국 호주라 조금 부담스러울 것도 같아요(인터뷰는 결승전 직전에 이뤄졌다)."

▲ 실제 아시안컵 경기는 좀 챙겨봤는지.

"해외 IP가 차단돼 국내에서 틀어주는 영상 보기가 쉽지는 않아요. K리그 경기도 보기 어렵고요. 다행히 '야동 말고 축동' 같은 페이스북 페이지에 골 장면이나 하이라이트가 올라와서 그걸로 틈틈이 챙겨보고 있어요."

▲ 온종일 축구와 사는 건 아니잖나. 그 외 얘기도 전해달라.

"예능 프로그램은 대부분 챙겨봐요. <우리 결혼했어요>는 김소은 씨네 커플에 빠져서 보고 있어요. 대리만족 차원에서 시청하는 건 절대 아니고요(웃음). <슈퍼맨이 돌아왔다>도 좋아해요. 삼둥이들 말하는 게 진짜 귀엽지 않아요?"



▲ 동료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지는 않은 모양이다.

"지금 저 말고 카메룬, 프랑스, 세네갈, 기니비사우 국적 선수가 있어요. 나머지는 다 스페인인데, 발렌시아처럼 먼 곳에서 온 애들이에요. 서로 의식 많이 해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저랑 같이 왼쪽에서 뛰는 애는 이번에 합류했는데요. 포지션이 겹치다 보니 대화도 거의 안 해요."

▲ 밟지 않으면 밟히는 삶, 참 잔인하고도 냉혹하다.

"경쟁이나 견제가 되게 익숙한 곳이에요. 인판틸 때부터 같이 올라온 애들이 4명밖에 안 돼요. 4년 사이에 다 나갔어요. 한편으로는 제가 경기를 뛰지 못하는데도 구단에서 잡고 있는 걸 보면 '믿고 봐주시는구나'라는 생각도 해요. 더 열심히 해야겠다 싶죠."

▲ 서먹서먹한 사이에 어디 맘고생 털어놓을 곳이라도 있었나.

"'힘내라'고 말을 해주는 친구들도 있기는 해요. 저랑 기니비사우에서 온 브라이마(17)라는 흑인 선수까지 총 두 명이 못 뛰거든요. 코치님이 '언제라도 뛸지 모르니까 계속 준비하면서 잘 기다려라'라고 하시는데, 사실 쉽지는 않죠."

▲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매주 경기를 뛰며 성장 중이었을 텐데.

"괜히 스페인까지 왔다며 후회도 했어요.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친구들 경기 뛰는 걸 보면서 배우는 게 있더라고요. 주말마다 저희 팀 게임 부지런히 보러다녀요. (오히려 더 참기 힘들지 않나) 진짜 완전 뛰고 싶죠. 가끔 친구들이 못할 땐 '내가 뛰었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해요."

▲ 훈련은 같이 해도 경기는 못 뛰는 상황에 소외감이 들지는 않았을까.

"저희 팀 경기 사진을 찍어주시는 분이 계세요. 그분이 일일이 보내주시면 다들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난리거든요. 심지어 경기를 지는 날에도 그래요. 저도 올리고 싶기는 한데, 유니폼 입고 뛰질 못하니 사진이 없네요(웃음)."



▲ AFC U-16 챔피언십으로 오랜만에 실전 경기를 뛰었다.

"오만전 때부터 엄청 헤맸어요. 태국전에 가서야 그나마 몸이 풀린 정도? 그전에 파주 NFC에서 대학교팀, 고등학교팀이랑 연습 게임도 하면서 몸 좀 올리려 했는데, 생각만큼 잘 되지는 않더라고요."

▲ 조별 예선만 봤을 때도 경기력 자체가 압도적인 수준은 아니었는데.

"오만전 뛰어 보고선 어렵다 싶었어요. 팀적으로 맞는다는 게 아예 없었거든요. 다행히 경기를 하다 보니 슬슬 되더라고요. 일본전도 내용 면에서는 수비만 했잖아요? 상대가 볼을 정말 잘 돌려 중간 중간에 팀 전체가 포기하는 느낌도 있었는데, 개인 능력으로 뒤집었죠."

▲ 백미는 시리아전 7-1 대파였다. 치고 들어가 왼발로 꺾어 때린 선제 골이 기가 막혔다.

"그 경기 제가 결정적인 찬스도 하나 날렸었는데···(웃음). 시리아전 끝나고 보니 결승이더라고요. 우승이란 목표를 세워는 봤어도 과정이 쉽지 않아 확신이 없었어요. 그 경기 끝나고 주장 (이)상민 형이 '마지막까지 잘하자'고 했는데, 북한전이 그렇게 힘들 줄은 몰랐어요."

▲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힘들던가. 그전 상대들과 차이가 크던가.

"북한 애들이 키도 크고, 나이도 많아 보였어요. 저희끼리 막 '민증 검사해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랬죠. 몸도 몸인데, 얼굴도 무섭게 생겨서 주눅이 들었던 것 같아요. 욕도 한국말로 똑같이 하던데요? 다 떠나서 실력 역시 좋았어요. 사전에 영상을 봤는데, 9번(한광성)이 특히 잘하더라고요."

▲ 토너먼트 때부터 팀이 본격적으로 오름세였기에 아쉬움이 더 컸다.

"스피드나 체력 면에서 밀린 게 사실이에요. 결승전 지고 다 울었어요. 하필 결승에서 북한에 지니까···. 시상식 때 북한 국기가 들어오는데, '아 저기에 태극기가 올라왔어야 했는데'라는 생각이 들어 왠지 억울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 바르셀로나 유스 팀에서는 자체 게임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현재로선 미니 게임을 4:4 정도로 하는 게 전부에요. 자체 게임만 해준다면 그나마 수월할 텐데, 그래서 조금 걱정이에요. AFC U-16 챔피언십 때에도 체력적인 면이 100%는 아니었거든요. 80%로 뛰다 대회가 끝났어요."

▲ 이번에 만날 상대는 아시아권과는 차원이 다르다. 완벽치 않은 몸으로도 괜찮을까.

"솔직히 약팀 만났으면 좋겠는데요(웃음). 토너먼트는 어느 팀이랑 붙어도 상관없는데, 일단 예선은 통과해야 하잖아요. 쉬운 상대 만나서 몸 끌어 올리고 조직적으로도 맞춰보고 싶어요. (스페인은 어떤가) 지금 후베닐B에도 스페인 대표가 4명이나 있는데요. 사실 좀···(웃음)."

▲ 대회 전 소집 기간이 길다면 좋을 텐데,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다.

"대부분 알던 친구들이에요. 초등학생 때 파주에 100명씩 소집해 운동도 같이 했었거든요. 중학생 때도 같이 얼굴 보면서 자란 사이고요. 지금도 '리그 경기 결과는 어떻게 됐냐', '여자친구는 생겼냐' 등 연락하면서 지내요. 물론 U-17 대회 얘기도 하고요."

▲ 지난 대회가 많은 걸 가져다준 만큼 이번 대회도 욕심이 나지 않나.

"TV에도 나오고, 기사로도 나가서 그런지 저를 알아보시는 분도 종종 있어요. 그런데 가끔가다 축구팬들이 아는 척하시는 정도지, 일상적인 일은 아니에요. 이번에도 일단 대회부터 잘해야죠."

▲ 마지막으로 식상한 질문 하나. 목표 한 번 들어보고 싶다.

"당연히 우승요. 아시아가 아닌 세계 대회라 쉽지는 않겠지만요.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 끝까지 해보고 싶어요."

사진=홍의택 기자, SBS Sports 중계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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