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진의 풋볼토크] 이승우에게 주어진 10번의 자격 증명
입력 : 2018.06.05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김성진 기자= 2018 러시아 월드컵에 출전할 선수들이 모두 결정됐다. 또한 월드컵 때 선수들의 등에 새겨질 등번호도 모두 정해졌다. 신태용호의 23명도 4일 최종엔트리 제출에 맞춰 등번호가 공개됐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자신이 선호하는 번호를 선택했다. 그런데 유독 눈에 띄는 등번호가 있다. 대표팀 막내인 이승우(20, 엘라스 베로나)가 10번을 등에 단 것이다.

축구에서 등번호 10번은 팀의 에이스를 상징한다. 과거 펠레가 10번을 달고 월드컵 우승을 하면서 10번의 가치는 더욱 높아졌다. 디에고 마라도나, 미셸 플라티니, 로베르토 바조, 로타 마테우스, 지네딘 지단, 데니스 베르캄프, 호나우지뉴, 리오넬 메시, 네이마르까지. 전 세계 최고의 선수들은 모두 10번을 달았다.

많은 선수들은 10번을 목표로 한다. 웨인 루니는 에버턴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했을 때 8번을 달았다. 하지만 당시 10번을 달았던 뤼트 판 니스텔로이가 팀을 떠나자 등번호를 8번에서 10번으로 변경했다. 이후 루니는 10번을 자신의 고유 번호로 지금까지 계속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10번의 가치가 많이 약해지는 모습이다. 선수들이 10번을 피하는 경향이 있고, 팀에서도 10번의 상징성을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 보인다.



▲ 한국 축구를 대표한 선수들이 단 10번
지난 2014년 브라질 월드컵까지 총 7명의 선수가 10번을 달았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10번의 자격을 보여줬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때는 고(故) 성낙운 선생이 10번을 달았다. 여러 국제대회에서 골을 터뜨린 당시 대표적인 공격수였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한국 축구 사상 첫 월드컵 골을 터뜨린 박창선이 10번을 달았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건국대를 졸업하고 프로무대에 데뷔했던 이상윤이 10번을 받았다. 4년 뒤인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는 고정운이 10번을 달고 뛰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은 최용수의 몫이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수비수인 이영표가 달았다. 10번 후보들이 모두 고사해 이영표가 달고 뛰었는데, 2도움을 올리며 10번의 자격을 보였다. 2006년 독일 월드컵부터 브라질 월드컵까지는 박주영의 차지였다.

이를 보면 이상윤을 제외하고는 당시 한국 축구를 대표하던 얼굴들이 10번의 주인공으로 월드컵 무대에 섰다. 그리고 대부분 10번에 어울리는 활약을 펼쳤다. 10번은 팀의 기둥으로서 승리에 앞장서야 하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팀들도 마찬가지다. 이번 월드컵에 나서는 팀들을 보면 모두 팀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10번을 달았다. 메시, 에덴 아자르(벨기에), 하메스 로드리게스(콜롬비아), 루카 모드리치(크로아티아), 모하메드 살라(이집트)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선수들이 10번의 주인들이다.

한국의 월드컵 조별리그 상대팀들도 메수트 외질(독일), 에밀 포르스베리(스웨덴), 히오반니 도스 산토스(멕시코) 등 팀의 간판 선수들이 10번을 달았다.



상징이 아닌 이승우, 그래서 더 힘든 10번의 자격 증명
한국 선수들은 선호하는 등번호를 다는 경향이 크다. 또한 황선홍, 홍명보의 영향으로 18, 20번을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이 선택한다. 러시아 월드컵에 나서는 대표팀에서도 수비의 핵심인 장현수는 20번을 달았다. 본인 스스로도 20번을 선호한다. 과거 여러 대표팀에서도 20번을 단 장현수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승우는 아무도 10번을 선택하지 않자 신태용 감독이 10번을 배정했다. 이승우는 연령별 대표팀에서는 10번을 달았지만 성인 무대에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로서는 영광스러운 순간이 됐다.

하지만 이승우가 지금까지 보여준 경기력, 실적과 팀 내 존재 가치 등을 볼 때 과연 10번에 어울리는지 의문이 든다. 10번의 상징성, 가치를 놓고 볼 때 이승우는 월드컵에 나서는 대표팀에 어울리는 10번의 선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승우는 어리지만 10번을 달지 말라는 법은 없다. 프랑스의 킬리앙 음바페(20)도 이승우와 나이가 같지만 프랑스의 10번을 달았다. 허나 음파베는 이미 세계적인 선수의 반열에 올랐다. 어려도 프랑스를 대표하기 충분하다. 하지만 이승우는 아직 그에 미치지 못한다.

물론 여러 선수들이 부상을 당했고, 선발되지 않았기에 10번에 어울리는 선수가 없다. 이승우가 10번을 받은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도 된다. 이승우도 "10번을 받는다고 경기장에서 하는 역할과 평상시 행동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중요한 10번 받으면서 자신감이 받게 된 것이 사실이고 자신감 있게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승우는 다부진 각오를 보였지만 위에 언급한 대로 10번은 팀의 에이스다. 위기의 순간 팀을 구하는 크랙이어야 하고, 팀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한다. 3번의 월드컵에서 10번을 달고 뛴 박주영은 그러한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프리킥 골로 16강 진출에 앞장섰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비록 최악의 부진을 드러냈지만, 후배들이 흔들리지 않게 중심을 잡아줬다.

이승우에게 이러한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현재 대표팀의 구심점은 기성용, 손흥민이다. 이승우가 깜짝 활약을 한다면 달라질 수 있지만, 냉정하게 바라본다면 이승우는 보조 역할이다. 그에게 10번의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월드컵 무대에서 10번을 단 선수가 팀을 이끄는 모습을 보기도 어렵다.

이승우는 부담스러운 10번의 역할을 맡게 됐다. 그리고 한국 축구는 10번의 상징성과 가치를 너무 가볍게 여기는 우를 범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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