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진의 풋볼토크] ‘은퇴 선언’ 현영민이 꼽은 5번의 결정적인 순간
입력 : 2017.12.30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김성진 기자= 현영민(38)은 2017년에 현역 선수로 활약한 유일한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멤버였다. 현영민을 제외한 당시 월드컵에 출전했던 22명은 현재 감독, 코치, 방송인, 해설위원 등으로 다양하게 활동 중이다.

그리고 현영민도 올해를 끝으로 현역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전남 드래곤즈는 그가 입은 마지막 유니폼이 됐고, 지난 11월 18일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렸던 대구FC와의 K리그 클래식 38라운드 원정경기는 그의 은퇴 경기가 됐다.

2002년 울산 현대에서 데뷔한 그는 제니트(러시아), FC서울, 성남 일화(현 성남FC)를 거쳐 전남까지 총 16년간 프로 무대에서 활약했다. K리그 통산 기록은 437경기 9골 55도움.

현영민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선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16년의 프로 생활을 하면서 큰 부상 하나 없이 철저한 몸관리로 성실하게 그라운드를 누볐다. 우직하게 자신이 할 일을 하며 K리그를 대표하는 측면 수비수로 활약했다.

오랜 시간 선수 생활을 하면서 그에게는 여러 기억이 남아있다. 현영민과의 전화통화를 통해 그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결정적인 순간들을 골라봤다.

1. 2002년 한일 월드컵
현영민은 빠른 발과 정확한 킥, 롱 스로인 능력을 인정 받아 2002년 한일 월드컵에 출전했다. 비록 단 1경기도 뛰지 못했지만 그는 언제나 출전 대기를 하며 동료들을 응원했다. 월드컵 출전은 축구를 보는 시야를 넓히고 실력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월드컵에 참여했던 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이다. 경기는 못 뛰었지만 23명 안에서 함께 해 죽을 때까지 기억에 남을 것이다. 사실 1경기라도 뛰고는 싶었지만 훌륭한 선배들이 많았기에 많이 뛰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했다. (당시에는) 경기에 못 나가는 것 때문에 힘들기도 했다. 그 때는 몰랐지만 그 뒤로 선배들을 만나서 얘기하면 대단한 일을 해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선수 생활을 하면서 에너지가 됐던 대회였다.”



2. 2002년 7월 7일 K리그 데뷔
현영민은 2002년에 울산 현대 유니폼을 입고 K리그에 데뷔했다. 그런데 데뷔전은 입단하고 반 년이 지난 7월에 이루어졌다. 당시 K리그는 월드컵에 지원하기 위해 선수들의 무기한 차출에 응했다. 이로 인해 현영민은 월드컵이 끝난 뒤 울산 선수로서의 첫 시합을 가질 수 있었다.

”프로에 데뷔하는 것이 꿈이었다. 그날은 꿈이 이루어진 날이었다. 부산 아이파크를 상대했는데 월드컵 행사를 마친 뒤 합류했을 때라 팀 전술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후반전을 준비했는데 김정남 감독님께서 할 수 있겠냐고 하셔서 하겠다고 말했다. 상대팀에 (송)종국 형이 있었다. 종국 형을 막는 것이 내 역할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2-1로 승리했다. 팀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는데 감독님께서 믿어 주셔서 감사했다.”



3. K리그 우승
현영민은 총 3차례 K리그 정상을 밟았다. 첫 우승은 2005년 울산에서였다. 이어 2010년과 2012년에는 서울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울산에서 주장을 맡았던 2005년에 처음 우승했다. 2010년에 서울에 트레이드 됐는데 운 좋게 두 번째 우승을 했다. 2012년에도 서울에서 우승을 한 번 더 했다. 리그컵 대회도 울산, 서울에서 우승했다. 얼마나 대단한 선수라고 이렇게 우승을 했는지.. 정말 우승한 순간들은 기억에 남는다. 우승을 하려고 정말 치열하게 했는데, 그 다음날이 되면 치열한 싸움이 끝나니까 허무해지는 느낌도 들었다.”



4. 제니트에서의 1년
현영민은 2006년에 1년간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활약했다. 3년의 계약을 맺고 러시아 무대에 진출한 첫 번째 한국 선수가 됐다. 제니트에서는 리그 10경기 등 시즌 17경기를 뛰었고 UEFA컵 8강전에서는 1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그 해 말 여러 사정이 겹치며 국내로 돌아왔다.

“아쉬울 수도 있지만 유럽 무대를 경험하고 돌아온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그 당시 팀이 우승했고 내가 정체된 느낌이 있어서 진출했다. 사실 2005년 여름에도 제안이 왔지만 팀에서 만류했다. 그 해 우승을 하고 울산과 계약이 만료됐다. 울산에서는 재계약을 제안했지만 도전해보고 싶었기에 해외 진출을 추진했다.
년 계약을 하고 갔는데 1년만 하고 돌아온 것에 대한 아쉬움은 있다. 러시아로 간 것은 후회하지 않는다. 그 쪽에서 좀 더 도전을 하고 유럽의 다른 리그로 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1년을 하고 2년 계약이 남아있었지만 가족 사정도 있고 결정을 내려야 해서 울산으로 돌아왔다.
지금 생각하면 언어도 그렇고 준비가 부족했는데 젊은 의욕으로 덤볐던 것 같다. 당시에는 제니트가 그렇게 좋은 팀인지 몰랐고 TV에서 보던 UEFA컵을 뛰어보기도 했다.
그래도 그 당시에 나는 최선을 다했다. 온 힘을 다 쏟았고 노력을 다 했다. 다만 준비를 조금 더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을 뿐이다.”


5. 전남에서의 마지막 경기
현영민은 올해를 끝으로 선수 생활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가장 최근에 뛴 경기이자 자신이 뛰는 마지막 경기이기도 했다. 대구와의 시즌 최종전을 떠올렸다.

”400경기 이상을 뛰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데뷔전과 마지막 경기다. 대구 원정경기였는데 우리가 0-1로 지고 있었다. 공격수가 투입될 상황이었지만, 직감적으로 내 마지막 경기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5분 가량 남겨놓고 투입됐고 내 마지막 경기가 됐다. 이기고 끝났다면 좋았을 것 같다.

현영민은 이제 제2의 인생을 준비해야 한다. 이제 은퇴를 결정했기에 당장 무엇을 하겠다는 것은 없다. 다만 지금까지 준비한 것을 토대로 축구와 관련한 일을 할 생각이다. 그는 B급 지도자 라이선스를 취득했고 얼마전에는 심판 강습에도 참가했다. 일찌감치 은퇴 이후의 삶을 준비하고 있엇다.

그는 “부상 한 번 없이 잘 마무리했다. 기본적으로 지도자를 생각하지만, 심판 강습을 받아보니 재미가 있고 흥미를 가졌다. 월드컵에 나갔던 선수가 월드컵에서 심판을 본다면 의미 있지 않을까”라고 한 뒤 “축구가 발전할 수 있는 일이라면 봉사활동이든 재능기부든 어떤 일이든 하겠다”고 말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게티이미지코리아, FC서울, 울산 현대

오늘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