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 페이퍼 사용 금지?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KBO
입력 : 2019.05.28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오상진 기자= 2018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보스턴 레드삭스와 LA 다저스의 경기. 다저스의 야시엘 푸이그(현 신시내티 레즈)가 배트 보이로부터 작은 종이를 전달받았다. '포지셔닝 카드(positioning card)'라 불리는 이것은 외야 수비 위치에 대한 정보가 담겨있는 종이였다. 푸이그는 이 종이를 한참 들여다본 뒤 뒷주머니에 넣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이러한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수비 시프트가 유행하기 시작한 몇 년 전부터 야수들은 상대 타자에 따른 수비 위치가 적힌 포지셔닝 카드를 틈날 때마다 들여다본다. 이는 내야수, 외야수를 가리지 않는다.



KBO리그에서는 얼마전 삼성 라이온즈 외야수 박해민이 화제가 됐다. 경기 중 상대 타자의 타구 방향 분포도를 체크하는 모습이 중계 화면에 잡혔다. 지상파 뉴스는 '수비 시프트는 과학'이라는 보도에서 이 장면을 좋은 예로 보여줬다. 다른 언론도 박해민의 수비 센스와 삼성 전력분석팀이 만들어 낸 결과물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날벼락이 떨어졌다. KBO는 외야 수비 페이퍼 사용을 금지시켰다. 이유는 일부 구단의 항의가 있었기 때문에 다음 단장회의 때까지 수비 페이퍼 사용을 금지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리그 규정을 살펴보면 야수가 경기장에 수비 페이퍼를 갖고 들어가는 행위를 규제하는 내용은 없다. 굳이 비슷한 조항을 찾자면 제 26조 2항 '외부로부터 페이퍼 등 기타 정보 전달 금지'를 들이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규정 위반이었다면 이미 박해민은 경기 중 퇴장을 당하고 제재를 받았을 것이다.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은 규정 위반이 아님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진짜 문제의 소지가 있는 행위라면 다음 단장회의에서 사용 여부를 결정한 뒤 규정을 적용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다. 시대의 흐름에 앞서가는 이들을 따라가기 위해 노력하기는 커녕 '우리가 못하는 건 너네도 안 된다'는 고약한 심보의 구단들의 행태도 문제지만 줏대 없이 일부 구단의 투정을 받아주는 KBO 사무국의 처신은 시대의 흐름을 정면으로 역행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뉴스1, 2019 KBO 리그 규정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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