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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으로 사라진 샌안토니오 '빅3'의 위대한 20년 [댄 김의 NBA 산책]
등록 : 2019.06.11
[스타뉴스 댄 김 재미저널리스트]
토니 파커. /AFPBBNews=뉴스1
토니 파커. /AFPBBNews=뉴스1
샌안토니오 스퍼스에서 팀 덩컨, 마누 지노블리와 함께 4차례나 팀을 미국프로농구(NBA) 챔피언으로 등극시킨 명예의 전당급 포인트가드 토니 파커(37)가 18년에 걸친 NBA 커리어를 접고 은퇴를 발표했다. NBA에서 20년을 뛰는 것을 목표로 했으나 끝내 마지막 2년을 채우지 못하고 유니폼을 벗기로 결심했다.


샌앤토니오의 전설이자 NBA 역사상 최고의 유럽 출신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되는 파커는 지난해 샌안토니오를 떠나 샬롯 호네츠와 계약하면서 커리어 마지막 시즌을 샬롯에서 보냈다. 지노블리나 덩컨처럼 샌안토니오 '원클럽 맨‘이 되지는 못했으나 그와 관계없이 은퇴발표만큼은 영원한 마음의 고향인 샌안토니오에 돌아와서 했다.

이로써 덩컨이 2016년, 지노블리가 2018년에 은퇴한 데 이어 파커마저 유니폼을 벗으며 2000년대 들어 NBA 무대를 주름잡았던 샌안토니오의 ‘빅3’는 모두 역사의 페이지 속으로 떠나가게 됐다.

지난 2001년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28번으로 샌안토니오에 지명된 파커는 1997년 드래프트 전체 1번으로 지명돼 4년 앞서 샌안토니오 유니폼을 입은 덩컨 및 1년 후 팀에 합류한 지노블리와 함께 샌안토니오 구단의 최전성기를 이끈 핵심선수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사실 샌안토니오가 마지막 22년을 한 해도 빠짐없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고 이 중 5차례나 NBA 정상에 오른 것에는 명장 그렉 포포비치 감독의 리더십이 결정적 역할을 했으나 이들 3명을 하나로 모았던 드래프트에서의 좋은 선택과 행운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팀 덩컨.  /AFPBBNews=뉴스1
팀 덩컨. /AFPBBNews=뉴스1
1996~1997시즌 당시 팀의 간판스타 데이비드 로빈슨이 부상으로 거의 시즌 전체를 미스하면서 20승62패에 그친 샌안토니오는 그 덕에 드래프트 로터리에서 전체 1번 지명권을 얻어 압도적인 최고 선수 덩컨을 잡는 행운을 누렸다. 이어 1999년 드래프트에서는 뒤에서 두 번째 지명권인 2라운드 28번(전체 57번)으로 지노블리를 선택했다. 지노블리는 이탈리아에서 3년을 더 뛴 뒤 2002~2003시즌부터 샌안토니오에 합류했다. 2001년 드래프트에선 전체 28번 지명권으로 파커를 잡았다.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0번 지명 이후로만 내려가도 팀의 주전급 선수를 건지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을 감안한다면 각각 1라운드와 2라운드 막판에 주전을 넘어 명예의 전당급으로 평가되는 파커와 지노블리를 건진 것이 샌안토니오에 얼마나 큰 대박 행운이었는지는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여기에 드래프트 로터리에서 전체 1번 지명권을 얻는 것 자체가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안 되는 데다, 그런 운이 따라줬다 해도 덩컨과 같은 역대급 선수가 드래프트에 나오는 것이 매년 있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샌안토니오의 전성기는 드래프트 행운에서 발원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덩컨과 파커, 지노블리는 지난 2002년 지노블리의 가세 이후 2016년까지 14시즌 동안 총 1000게임 이상을 함께 뛰며 4차례나 NBA 타이틀(2003, 2005, 2007, 2014년)을 차지했다. 파커와 지노블리가 합류하기 전인 1999년 덩컨과 로빈슨의 ‘트윈타워’를 앞세워 구단 역사상 첫 우승을 차지한 샌안토니오는 이들 트리오 덕에 14년 동안 4개의 타이틀을 추가하며 NBA 명가 반열로 올라섰다.

마누 지노블리.  /AFPBBNews=뉴스1
마누 지노블리. /AFPBBNews=뉴스1
그 중 마지막인 2014년 타이틀은 사실 이들 ‘빅3’가 모두 활약하기는 했으나 또 하나의 드래프트데이 행운이 결정적이었다. 계속 우승권에서 맴돌다 보니 드래프트 상위 지명권을 얻을 기회가 없던 샌안토니오는 지난 2011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5번으로 인디애나 페이서스가 지명한 샌디에이고 주립대학 출신 포워드에 주목했다.

그의 이름은 카와이 레너드. 샌안토니오는 드래프트 당일 밤 3년 전 드래프트에서 전체 26번으로 뽑았던 포인트가드 조지 힐(현 밀워키 벅스)을 인디애나에 내주고 레너드를 트레이드해 왔고 이 트레이드가 또 다시 대박을 터뜨렸다.

드래프트 때만 해도 초특급 유망주 후보로는 분류되지 않았던 레너드가 꾸준하게 빠른 성장세를 이어가며 ‘빅3’의 뒤를 받쳐주는 든든한 재목으로 떠올랐고 그가 2년차였던 2012~2013시즌에 샌안토니오는 2007년 이후 6년 만에 다시 NBA 챔피언 결정전까지 진출했으나 르브론 제임스와 드웨인 웨이드가 이끈 마이애미 히트와 7차전 접전 끝에 패해 구단 역사상 첫 NBA 파이널스 패배를 당했다.

하지만 이 시리즈에서 14.6득점과 11.1리바운드로 더블-더블을 기록하는 활약을 보이며 본격적으로 정상급 선수로 떠오르기 시작한 레너드는 이듬해 다시 올라간 NBA 챔피언 결정전에서 다시 만난 마이애미를 상대로 게임당 17.8득점을 올리며 샌안토니오의 4승1패 승리와 우승을 견인했고 파이널스 MVP로 선정됐다. 당시 만 22세였던 레너드는 만 20세와 22세에 MVP를 차지했던 매직 존슨 이후 최연소 파이널스 MVP가 되는 기록을 세우며 대성을 예고했다.

이듬해엔 리그 올해의 수비수로 선정된 데 이어 2015~2016시즌엔 생애 첫 올스타로 뽑히며 리그 정상급 스타를 향한 도약을 이어간 레너드는 ‘빅3’가 하락세로 접어든 상황에서 샌안토니오의 다이너스티를 이어갈 새로운 에이스로 떠올랐다. 그러나 2017~2018시즌 뜻하지 않았던 부상을 입은 뒤 부상에 대한 견해 차로 팀과 갈등을 빚으며 결정적으로 관계가 틀어져 결국 2018년 트레이드를 통해 샌안토니오를 떠나는 길을 선택하고 말았다.

카와이 레너드.  /AFPBBNews=뉴스1
카와이 레너드. /AFPBBNews=뉴스1
레너드가 샌안토니오를 떠나겠다고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가 무엇이었는지는 여러 가지 보도가 나왔고 소문도 무성했지만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다만 허벅지 근육 부상으로 인한 레너드의 이탈이 장기화되자 팀 닥터들은 복귀가 가능할 만큼 회복됐다고 판정했으나 레너드는 자신이 직접 고용한 의사를 통해 복귀가 어렵다는 진단을 얻어내면서 구단과 레너드 사이의 관계가 결정적으로 틀어진 것으로만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이번에 은퇴한 팀의 간판 파커가 자신이 얼마 전 입었던 허벅지 근육 부상이 레너드의 부상에 비해 100배는 더 심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레너드와 사이가 결정적으로 틀어졌다는 설이 돌기도 했다. 결국은 파커가 레너드와의 결별을 결정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파커는 자신의 발언은 팀 메디컬 스태프가 얼마나 뛰어난지를 알리려는 긍정적인 시각에서 한 것임에도 그것이 레너드에 대한 공격으로 왜곡 해석됐다며 유감을 표시했으나 끝내 레너드와 1대1로 만나 오해를 풀 기회는 얻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레너드는 토론토 랩터스로 이적한 뒤 이번 시즌 토론토를 구단 역사상 첫 NBA 챔피언 결정전으로 이끌며 현재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 결승시리즈에서 토론토의 3승2패 리드를 이끌고 있다. 과연 문제의 핵심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빅3에 이어 레너드마저 떠나간 샌안토니오로서는 지난 20년간 이어왔던 구단 최고의 전성기가 막을 내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됐다.



댄 김 재미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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